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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슬로바키아 롬인 공동체 방문 “교회는 여러분의 집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시체 외곽에 위치한 롬인 게토지역인 루니크 9구역을 방문해 연설했다. “롬인은 무자비한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판단과 편견은 서로의 거리를 멀게 할 뿐입니다. 평화적으로 더불어 사는 길은 통합의 길입니다.” 교황은 2008년부터 게토지역에서 선교하고 있는 살레시오회의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롬인 공동체에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과거의 상처를 뛰어넘어 대담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재협 신부

“우리를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 환영합니다.” 흰 바탕에 이탈리아어 대문자로 만든 무지개 색깔의 환영문구는 루니크 9구역(Luník IX)에 들어선 7-8개 아파트의 회색빛과 대조를 이뤘다. 루니크 9구역은 코시체 외곽에 위치한 롬인(집시) 게토지역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슬로바키아 사도 순방 셋째 날인 9월 14일 오후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소외된 이들이 모여 사는 루니크 9구역을 찾았다. 

판단과 편견을 거부하십시오

이날 4시 정각, 교황은 집시 음악에 맞춰 박수치는 롬인들과 반쯤 허물어진 건물의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는 롬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행사장 무대에 도착했다. 다채로운 꽃이 그려진 커튼과 흰 천막지붕으로 마련된 무대에 오른 교황은 연설을 통해 소수 민족의 삶을 악화시키는 “판단과 편견”을 규탄하고 “평화적으로 더불어 사는 유일한 길인 통합의 길을 걸어가라”고 당부했다.

“판단과 편견은 서로의 거리를 멀게 할 뿐입니다. 대립과 과격한 말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게토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갈라놓으면 결국 분노로 이어집니다. 평화적으로 더불어 사는 길은 통합입니다.”

루니크 9구역의 축제

대형 스크린, 바리케이드, 대형 현수막, 경호원, 노란조끼를 입은 많은 자원봉사자들로 가득한 행사장의 분위기는 기타를 들고 전통의상을 입은 이날 행사의 주요 참석자인 루니크 9구역 주민들에게 익숙한 광경은 아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외부에서 루니크 9구역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장벽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이와 비슷한 행사가 열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또한 어떤 외부인도 이 구역 안으로 발을 들인 적이 없다. 이날 교황 방문을 위해 루니크 9구역은 꽃무늬를 넣어 건물 외벽을 하얗게 칠하고, 길을 청소하며, 잔디를 가꾸는 등 주변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다시 활력을 찾았다. 

교황은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 손을 흔드는 100여 명의 아이들을 맞이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두 쌍의 롬인 부부와 살레시오회 소속 피터 바세녜이(Peter Basenyei) 신부의 증언을 경청했다. ‘살레시오 사목센터’를 운영하는 바세녜이 신부는 10년 넘게 롬인 공동체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누구도 교회에서 소외감을 느껴선 안 됩니다

아내 베아타(Beáta)와 함께 증언한 얀(Ján)은 교황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부부의 증언을 경청한 교황은 과거에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롬인에게 건넨 위로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여러분은 교회의 가장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 여러분은 교회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교회에서 그 누구도 소외감을 느끼거나 한쪽으로 치워진다고 느껴선 안 됩니다. 이것은 진부한 표현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살고, 각자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모두 같은 팀의 일원이라고 느낄 때라야 교회로 불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되길 원하신다”며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가 하나의 보편적인 가족이 되길 원하신다”고 강조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집입니다. 여러분의 집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언제나 환영한다고요. 여러분은 교회를 집처럼 편하게 생각하십시오. 그 안에 머무르길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뿐 아니라 그 누구도 교회 밖으로 쫓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교황은 “함께 산다는 현실은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많은 고정관념을 허물 수 있다”고 증언한 얀의 체험을 다시 한 번 인용하며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편견을 뛰어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장애물이나 원수로 바라보거나, 그 사람들의 얼굴과 역사를 알아가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판단만 내린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마라”고 명하셨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확실한 근거도 없이 소문만으로 이야기를 전하는지 모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엄격하게 심판하면서 자신은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이웃에게는 완고한 모습 말입니다.”

“판단이 결국 편견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가 얼마나 자주 사람들에 대한 말을 꾸며내는지 모릅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 형제자매의 아름다움을 말로 훼손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현실을 미리 정형화된 각자의 생각으로 축소하고 재단해선 안 됩니다. 사람은 어떤 도식으로 정형화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무자비한 심판의 대상, 롬인

교황은 “롬인이 너무 자주 선입견의 대상, 무자비한 심판의 대상, 차별적 고정관념의 대상, 명예를 훼손하는 말과 행동의 대상이 돼 왔다”고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는 더 빈곤한 사람들, 인류애가 빈곤한 사람들이 됐습니다.”

따라서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 “선입견에서 대화로, 고립에서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실천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을 니콜라(Nikola)와 르네(René) 부부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부부는 루니크 9구역의 폐허 속에서도 두 아이를 낳았으며, “세태를 거슬러라”고 조언한 주변 가족들의 격려와 몇몇 신부들의 사목적 배려로 아이들을 키웠다. 두 아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학교를 졸업해 직장을 구했고, 코시체에 집을 마련했다. 교황은 이 가족을 향해 “여러분은 많은 사랑을 체험했고 여러분의 자녀에게 무엇이라도 더 해주려는 희망으로 성장해 왔다”고 말했다. “두 분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메시지를 남겨줬습니다. 바로 사람에 대한 돌봄이 있는 곳에서, 사목적 배려가 있는 곳에서, 인내와 구체적인 노력이 있는 곳에서, 모든 것은 열매를 맺는다는 메시지 말입니다. 즉시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결국 열매를 맺습니다.”

아이들의 미래

통합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시작해 인내로 전진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유기적 과정”으로 “시간이 걸리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교황은 무엇보다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아이들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큰 꿈이 우리가 세운 장벽에 부딪혀 부서지면 안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장애물이나 차별 없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길 원합니다. 아이들은 통합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교황은 “성급한 합의”를 모색하는 선택보다 “모든 이의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살레시오회의 활동

교황은 2008년부터 게토지역에 자리잡고 활동하는 살레시오회의 통합적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교황은 살레시오회의 활동이 “그 자체로 수고로운 것은 물론,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오해와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경험한다”며 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변방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지속해 나가길 격려했다. 아울러 롬인 공동체뿐만 아니라 난민과 재소자들을 위한 활동에 대해서도 격려의 말을 전했다.

교황은 특별히 “사회복지사업이 아닌 인격적 동반”을 위해 활동하는 피터(Peter) 신부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소외된 이들을 찾아 나서길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일이 예수님을 찾아나서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락한 곳이 아닌 열악한 곳, 권력이 아니라 섬김이 다스리는 곳,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아니라 삶으로 투신하는 곳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곳에 계십니다.”

교황은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당부하며 연설을 마쳤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과거의 상처를 뛰어넘어 대담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길 바랍니다. 정직한 노동의 길, 일용할 양식을 얻는 존엄성 실현의 길, 상호신뢰를 증진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길 말입니다. 팔리케라브(롬어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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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9월 2021, 1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