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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과 슬로바키아 그리스도교 일치위원회 대표자들의 만남 프란치스코 교황과 슬로바키아 그리스도교 일치위원회 대표자들의 만남 

교황 “그리스도교의 일치 없이 하나의 유럽 꿈꿀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슬로바키아 사도 순방의 첫 공식일정으로 슬로바키아 그리스도교 일치위원회 대표자들과 만났다. 교황은 “어떤 제도의 노예보다 내적 노예상태”가 더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다음과 같이 초대했다. “아직 우리는 같은 성찬의 식탁에 함께 앉지 못하지만, 적어도 가난한 이들을 대접하면서 그들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함께 대접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선물이 우리 각자의 식탁에 현존하실 것입니다. 이 같은 행동은 (...) 특히 코로나19 대유행을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Salvatore Cernuzio / 번역 이재협 신부

“자유 안에서 신앙을 살아내기”, 개인의 자유와 특권에서 자유로워지기, “특정 이해관계, 역사적 이유, 정치적 유착관계”에서 자유로워지기, 이미 여러 “이념”에 물든 유럽에서 그리스도교 뿌리를 회복할 수 있도록 교회일치의 여정을 이어가기, 비록 “아직 우리가 같은 성찬의 식탁에 함께 앉지 못하더라도”, 가장 가난한 이들을 대접하면서 그들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함께 대접하는 것이야말로 “코로나19 대유행을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표징. 프란치스코 교황은 슬로바키아 그리스도교 일치위원회 대표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슬로바키아 시인 사모 칼룹카(Samo Chalupka)의 작품을 비롯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말을 인용하며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연설했다.

일치와 형제애의 씨앗인 그리스도교 신앙

교황은 브라티슬라바의 첫 공식일정으로 루터교, 정교회, 감리교, 후스파, 침례교, 장로교 등 슬로바키아의 11개 교회 그리스도교 대표자들과 만났다. 주 슬로바키아 교황대사관의 넓은 응접실에서 진행된 이번 만남은 슬로바키아 그리스도교 일치위원회 의장 겸 체코-슬로바키아 동방 정교회 라스티슬라브(Rastislav) 대주교의 인사말로 막을 열었다. 라스티슬라브 대주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를 축복하고 서로를 선한 눈으로 바라보자”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그리스도교 사이의 갈등과 위기가 지속되는 것을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이는 우리 모두에게 해로운 일입니다. 타교회의 성장과 진보를 기뻐합시다. 한 교회의 영적 축복으로부터 다른 교회 신자들도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은 말로 연설을 시작했다. “만남을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는 슬로바키아에 온 순례자로 여기에 있고, 여러분은 교황대사관의 반가운 손님입니다. 슬로바키아 사도 순방의 첫 일정으로 그리스도교 일치위원회 대표들인 여러분과 만남을 갖는 이 자리는 슬로바키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일치의 씨앗이자 형제애의 누룩이라는 사실, 나아가 그렇게 되고자 하는 염원의 표징입니다.”

자유로운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교황은 “갈등을 넘어 친교로 나아가는 여정을 함께 걸어가자”며 항상 표현해 왔던 초대를 거듭 강조했다. 이어 “종교 자유가 억압되거나 무신론자들에 의해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박해 시대를 거친 후에” 슬로바키아의 여러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친교를 위한 여정이 새롭게 출발했다고 말했다. 새롭게 출발한 이 여정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공통적으로 체험한 길”이라고 교황은 지적했다. 

“언제나 노예상태로 돌아가려는 유혹이 있습니다. 어떤 제도의 노예가 아니라 그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곧, 내적 노예상태로 돌아가려는 유혹입니다.”

인간의 자유

이것이 바로 슬로바키아의 여러 그리스도교 대표자들에게 건넨 교황 연설의 핵심 주제다. 교황은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제5권 ‘대심문관’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를 인용했다. 교황의 인용은 소설 속 대사로, 대심문관이 다시 한 번 인간 세상에 내려와 잡혀 온 가상의 예수님을 심문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대심문관은 예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이유로 다음과 같이 심문한다. 

“인간에게 자유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으니까.”*

*편집주: 이전의 노예상태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극복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자유를 향해 나아가려는 용기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교황이 인용한 소설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너(예수님)는 세상에 나가고 싶어하는구나. 자유에 대한 약속만 있을 뿐 빈손으로 말이다. 하지만 순진하고 본래 비천한 인간들은 그 약속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여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나 인간 사회에서 자유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결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제5권 ‘대심문관’, 이대우 옮김, 민음사 2007 참조)

교황은 이 소설의 “가시 돋친” 대사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러시아 대문호의 생각을 다시금 설명했다. “소설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편안한 노예상태를 기꺼이 교환하려는 이들일 뿐이라며, 빵과 안락함을 얻을 수 있다면 자신들을 위해 대신 결정을 내려주는 누군가에게 복종한다고 덧붙입니다.”

빵과 안락함에 안주하려는 덫

교황은 “우리에게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자며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빵이나 작은 무언가에 안주하는 덫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서로 도웁시다.”

이러한 위험은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거나 잠잠해졌다고 느낄 때, 혹은 우리가 평온하고 고요한 삶에 대한 희망에 안주할 때” 발생한다. 교황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특권”을 갈망한다고 지적했다.

복음을 위한 자유인가 안락한 공간을 추구하는 자유인가?

유럽의 심장부 슬로바키아에서 교황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선포에 대한 열정과 증거하는 예언적 소명의 길에서 헤매고 있지 않나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복음의 진리인가요? 아니면 특별한 방해 없이 쉴 수 있고 자신을 꾸밀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의 확보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나요? 아니면 혹시 빵과 안락함에 취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치를 위한 추진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치를 이루려면 확고한 선택, 포기, 희생을 전제로 한 성숙한 자유가 요구됩니다. 분명 일치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일치는 세상이 우리를 믿게 하는 전제조건이 아닌가요?”

특정 이념들로부터 자유로운 유럽

교황은 시선을 확대해 여러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각 개별 공동체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지 말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형제자매의 자유 또한 우리의 자유입니다.” 전 유럽의 복음화는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바로 이 “형제적 방법”과 “복음 선포의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일치된 그리스도교적 증언”을 통해 싹을 틔웠다고 교황은 말했다. 이어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가 오늘날 여러 그리스도교 사이의 형제적 친교를 가꾸는 여정의 모범과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약 우리 여러 그리스도교가 완전한 친교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다면, 바로 그 그리스도교 뿌리를 회복하려는 하나의 유럽을 어떻게 바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각 개별 교회 신자들의 필요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를 우선하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각종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하나의 유럽을 꿈꿀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유럽의 여러 공동체 사이에서 아직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서로를 돌보지 않는다면, 복음을 간직한 하나의 유럽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특정 이해관계, 역사적 이유, 정치적 유착관계가 우리의 친교 여정에서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관상과 활동

교황은 일치의 여정을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첫째는 ‘관상’이다. “오늘날 유럽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 영적 전통을 가꿔 나가도록 서로 협력합시다. 특히, (…) 관료적·기능적 효율성을 바탕으로 한 신앙 공동체를 만들려고 궁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는 ‘활동’이다. 왜냐하면 “일치는 어떤 공동 가치에 대한 선의와 합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주님 곁에 가까이 데려다 주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구체적인 무엇을 함께 해냄으로써” 이뤄지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

우리를 주님 곁에 가까이 데려다 주는 사람들은 바로 “가난한 이들”이다. 그들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 “자선의 나눔은 더 넓은 관점을 열어줄 수 있으며, 편견과 오해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더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교황은 슬로바키아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슬로바키아 출신 사모 칼룹카 시인의 시 ‘모르 오!’(Mor ho!)의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이방인이 진심을 담아 우리 집 문을 두드릴 때, 그가 누구든, 가까이서 온 사람이든 멀리서 온 사람이든, 낮이든 밤이든, 우리가 기다려 온 하느님의 선물(이방인)이 우리 식탁에 함께할 것이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우리는 같은 성찬의 식탁에 함께 앉지 못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가난한 이들을 대접하면서 그들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함께 대접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선물이 우리 각자의 식탁에 현존하실 것입니다. 이 같은 행동은 몇 마디 말보다 훨씬 설득력 있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특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장 약한 이들 편에 서 있을 때라야 코로나19 대유행을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마침기도: 시편 130편

슬로바키아 그리스도교 일치위원회와의 만남은 최근 종교 간 대화의 전통에 따라 시편 130편을 마침기도로 함께 바치고 단체 사진을 촬영하며 마무리됐다. 라스티슬라브 대주교는 위원회를 대표해 슬로바키아 개신교의 고대 역사 안에서 보편 교회의 탄생을 묘사한 그림의 사본을 교황에게 선물했다. 이어 그림과 함께 작품에 대한 설명이 담긴 책자를 작은 선물로 준비했다고 말하며, 책자에 있는 구절 중 의미 있는 한 구절을 교황에게 직접 전했다. “한 사람의 선 안에 모든 이의 선이 감춰져 있습니다.“ 

교황은 이전의 사도 순방에서 해 왔던 대로 주 슬로바키아 교황대사관에서 슬로바키아 예수회원들과 비공개 만남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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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9월 2021, 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