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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중에 기도하면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9일 주님 세례 축일 삼종기도 훈화를 통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동안 아버지께 기도하셨다고 강조하며 우리도 이를 본받아야 한다고 초대했다. “기도하면 하늘이 열립니다. 생명에 산소를 주고, 환난 중에도 숨을 쉬게 합니다.” 교황은 우리가 환난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들어 올려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기도가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도록” 하자면서 “기도를 소홀히 하지 말자”고 당부했다. 또한 세례 날짜를 기억하자고 말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전례의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메시아이신 그분께서 요르단 강으로 가셔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약 30년 동안 은둔의 삶을 살아오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기적을 통해서나 강단에 올라 가르치시면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려고 요한에게 갔던 군중과 함께 줄을 서십니다. 오늘 전례의 찬미가는 하느님 백성이 겸손하게 맨발과 헐벗은 영으로 세례를 받으러 갔다고 말합니다. 맨발과 헐벗은 영으로 갔다는 것은 아름다운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의 고난을 함께 나누시고, 우리에게로 ‘내려오십니다.’ 그분께서 강으로 내려오십니다. 인류의 상처입은 역사 속으로 오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상처를 낫게 하시려고 우리의 물속에 잠기십니다. 우리와 함께, 우리 가운데로 몸을 담그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위로 올라가지 않으시고, 백성처럼 헐벗은 영과 맨발로 우리를 향해 내려오십니다. 그분께서는 혼자 오시지도, 특권층 사람들과 함께 오시지도 않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백성과 함께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그 백성에 속해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세례를 받으시려고 백성과 함께, 그 겸손한 백성과 함께 오십니다.

중요한 점 한 가지를 잠시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순간에, 성경은 “기도를 하시는데”(루카 3,21)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을 관상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기도하십니다.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주님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분께서 우리처럼 기도하실까요? 그렇습니다. 복음이 수차례 되풀이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하십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할 때, 때론 한밤중에, 중요한 결정을 하시기 전에 말입니다. (...) 그분의 기도는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 생애의 “두 가지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요르단 강의 물속으로, 우리를 향해 ‘내려오시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눈과 마음을 ‘들어올리시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위한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우리 모두는 삶의 문제와 수많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 있으며, 우리를 낙담시키는 어려운 순간과 선택에 직면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들어 올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가 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탈출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주술적인 의식이나 암기로 배운 노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도록 하는 방식,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분께서 우리와 소통하시려는 바를 파악하는 방식입니다. 기도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갈 힘을 제게 주십시오.” 우리 역시 많은 경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시키도록 도와주며, 그분과의 만남에 우리 마음을 열어줍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우리 마음을 주님께 여는 열쇠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 그분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체험하는 것을 그분께 내어 맡기며 침묵 속에 머무는 것입니다. 때론 욥처럼 그분께 울부짖기도 하고, 때론 하소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욥처럼 부르짖으십시오. 그분께서는 아버지이시며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절대 우리에게 화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십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빌어 말하자면, 기도하면 “하늘이 열립니다”(루카 3,21 참조). 기도하면 하늘이 열립니다. 생명에 산소를 주고, 환난 중에도 숨을 쉬게 하며, 만사를 더 폭넓게 보도록 합니다. 특히 우리로 하여금 요르단 강에서 예수님께서 겪으신 체험과 똑같은 체험을 하게 해 줍니다. 곧, 우리가 아버지로부터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아버지께서는 복음에서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세례를 받은 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세례 때 우리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잠김으로써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례 받은 날을 잊지 맙시다! 만일 제가 지금 여러분 각자에게 ‘세례 받은 날짜가 언제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어쩌면 몇몇 분들은 그날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세례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그날은 우리가 다시 태어난 날,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가 된 때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 날짜를 모르신다면, 집에 가셔서 여러분의 어머니, 고모, 혹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여쭤보십시오. “제가 언제 세례를 받았나요?” 그리고 그날을 기억해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세례 받은 날을 기념하십시오. 오늘, 지금 이 순간,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봅시다. 나의 기도는 어떠한가? 나는 습관적으로 기도하는가, 그냥 기도문을 외면서 마지못해 기도하는가? 아니면 나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만남인가? 나는 하느님 백성 가운데 있는 죄인인가? 나는 하느님 백성에게서 한 번도 멀어진 적이 없는가? 나는 하느님과의 내밀한 관계를 함양하고 있는가? 나는 하느님과 대화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가? 매일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 중에 기도를 소홀히 하지 맙시다. 시간을 내어 기도합시다. 짧은 기도를 하루 중에 자주 바치고, 매일 복음을 읽읍시다. 기도하면 하늘이 열립니다.

이제 기도하시는 동정녀 성모님께 기도합시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의 노래가 되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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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1월 2022, 16:01

삼종기도(三鐘祈禱, 라틴어 Angelus 안젤루스)는 예수님 강생(降生) 신비를 기억하면서 하루에 세 번 바치는 기도다. (이 기도를 바치라는 표시로) 아침 6시, 낮 12시, 저녁 6에 종을 세 번씩 치면서 기도한다. 안젤루스(Angelus)라는 명칭은 라틴어로 시작하는 삼종기도 “Angelus Domini nuntiavit Mariae(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의 첫 단어인 안젤루스(Angelus)에서 유래됐다. 삼종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초점을 둔 세 개의 간단한 계응시구와 세 번의 성모송으로 구성된다. 또한 이 기도는 주일과 대축일 정오에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순례객들과 교황이 함께 바친다. 삼종기도를 바치기 전에 교황은 그날 독서에서 영감을 얻은 짤막한 연설을 한다. 기도를 바친 다음에 교황은 순례객들에게 인사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는 안젤루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도인 레지나 첼리(라틴어 Regina Coeli ‘하늘의 모후님’), 곧 부활 삼종기도를 바친다. 삼종기도는 세 번의 영광송을 바치면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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