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을 맞아 로마 소재 프랑스 군인묘지를 찾아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2021년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을 맞아 로마 소재 프랑스 군인묘지를 찾아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2021년 11월 2일)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이는 집회서의 한 구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삼종기도에서 이를 언급한 바 있다. 오늘날 우리 귀에 들려오는 적개심 가득한 말들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확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시의적절한 문장으로 보인다. 적개심과 더불어 무관심도 세상에서 잊힌 전쟁의 수많은 희생자와 인류를 위태롭게 만든다.

Sergio Centofanti / 번역 김호열 신부

적개심 가득한 말이 늘어날 때, 그러한 말이 사람을 죽이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기가 되면 폭력행위로 번질 위험에 빠지기 마련이다. 너무나 많은 분쟁,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숱한 무관심으로 이미 상처 입은 세상에서 적대적인 말이 늘어날수록 위험은 모두에게 더 심각해진다.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이 적대적인 말을 주고받으면서 자극을 받게 되면 쉽사리 잘못된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 이 세상의 강자들이 적개심 가득한 말을 한다면 모든 인류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원한을 거스르는 문장

성경 말씀을 들어보자.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집회 28,6). 집회서는 약 2200년 전 예루살렘 출신 유다인 ‘시라의 아들 예수(Yehoshua ben Sira)’가 저술한 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20년 9월 13일 삼종기도에서 이 문장을 언급한 바 있다.

“저는 오늘 아침 미사를 거행하던 중 제1독서인 집회서의 한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아서 잠시 생각에 머물렀습니다. 그 구절은 이러한 말씀이었죠.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집회 28,6).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종말을 생각하라! 여러분이 관 속에 들어갈 때 (...) 증오심을 가지고 가시겠습니까?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증오나 원한을 버리십시오. 매우 감동적인 이 문장을 생각해 봅시다.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집회서는 이어 말한다. “파멸과 죽음을 생각하고”(집회 28,6) “이웃에게 분노하지 마라”(집회 28,7). 그리고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집회 28,2).

증오와 무관심

미움은 남에게 상처를 주기에 앞서 자신에게 상처를 준다. 또한 무관심도 큰 악이다. 우리는 수많은 고통의 상황을 쉽게 잊으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우리는, 잊힌 전쟁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또 죽어가는 사람들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익숙해져 버렸다. 

잊힌 시리아

11년 이상 시리아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약 50만 명의 사망자와 1100만 명 이상의 난민과 실향민이 발생했다. 주 시리아 교황대사 마리오 제나리(Mario Zenari) 추기경은 슬픔에 잠겨 시리아 국민들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특히 조국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이민을 떠나려는 젊은이들의 마음에서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제나리 추기경은 시리아 국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빵이 부족합니다. 이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밀가루도 부족합니다.” 시리아 전쟁 기간 동안 적어도 그리스도인의 3분의 2가 시리아를 떠났을 것이다. “이러한 분쟁에서 소수 집단은 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입니다.” 이젠 시리아 국민들이 모든 이의 관심에서 잊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시리아를 잊었다는 게 시리아에 닥친 또 다른 심각한 불행입니다. 모두에게서 잊히는 일 말입니다. 이렇게 잊히는 게 시리아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줍니다.”

에티오피아의 전쟁과 기아 

아디스아바바대교구장 베르하녜수스 수라피엘(Berhaneyesus Souraphiel) 추기경은 에티오피아의 전쟁과 기아에 대해 말한다. “수백만 명의 에티오피아인들이 인도적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이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미얀마의 시련

미얀마 양곤대교구장 찰스 마웅 보(Charles Maung Bo) 추기경은 미얀마에서 “우리는 여전히 골고타 언덕 위에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군부 독재 정권은 교회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수만 명의 국민들이 집을 떠나 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누구도 경제 파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미래를 박탈당했다고 느낀다. 보 추기경은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신자들의 깊은 믿음이 큰 감명을 준다”며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의 어리석음이라는 심오한 신비 안에서 희망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예멘, 세상의 변방

전임 남아라비아·예멘 대목구장 폴 힌더(Paul Hinder) 주교는 인도주의적 비상사태로 수백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 예멘의 잊힌 내전에 대해 말했다. 20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기아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힌더 주교는 “이 잊힌 전쟁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예멘은 진정으로 세상의 변방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전술한 사례는 단지 몇 건의 잊힌 전쟁일 뿐이다. 전쟁은 종종 증오 섞인 말로 시작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 증오의 씨를 뿌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혀는 잔인한 무기이고,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형제로서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산타 마르타의 집 미사 강론, 2019년 11월 12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09 6월 2022, 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