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 Papa in basilica, messa nella Giornata dei poveri Il Papa in basilica, messa nella Giornata dei poveri  (ANSA)

[미사 강론]교황, “국가 지도자들은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야… 정의가 없이는, 평화도 있을 수 없습니다."

레오 14세 교황이 11월 16일 제9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집전한 미사의 강론을 통해 젊은이들이 흔히 겪는 수많은 물질적이고 윤리적, 영적 결핍을 관통하는 외로움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관심의 문화”를 발전시키기를 당부했다. 가난한 이들은 단지 특정한 사회학적 범주가 아니고, 인간적인 공존의 삶이 “모든 이를 위한 형제애와 존엄성의 공간”이 되도록 각 사람이 종교적 내면주의와 무관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9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미사
레오 14세 교황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전
연중 33주일, 2025년 11월 16일


미사 시작 전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즉석에서 건넨 인사

 

안녕하세요! 좋은 주일입니다!
모두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복음을 읽을 때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구절 중 하나가 바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입니다. 우리가 모두 주님의 가난한 이들 가운데 속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우리는 그 생명을 매우 감사하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함께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참석 인원이 많아 대성전이 좀 비좁아졌습니다. (...) 여러분도 교회의 일원이므로 화면을 통해 미사에 참례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랑과 믿음으로 참례해 주시고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 하나 되었음을 알아주십시오.

이제 미사를 거행합니다. 나중에 삼종기도를 바칠 때 이곳 광장에서 만납시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길 빕니다. 좋은 주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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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들은 우리에게 역사의 최종 결과를 직시하라고 촉구합니다. 말라키 예언자는 “주님의 날”의 도래를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 예견했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하느님의 때라고 묘사되는데, 이 새 시대에는 정의의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처럼, 가난하고 겸손한 이들이 희망을 주님으로부터 최종적이고 확실한 답변으로 받을 것이고, 특히 스스로 방어할 힘이 없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악한 자들의 행위와 불의는 뿌리째 뽑혀 짚 더미처럼 불타버릴 것입니다.

새 시대에 떠오르는 이 정의의 태양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실 주님의 날은 역사의 마지막 날일 뿐만 아니라, 오시는 하느님의 아드님 안에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에서 당시의 전형적인 묵시 문학적 언어를 사용하시면서 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시작하셨습니다. 실제로 그분 자신이 역사의 극적인 사건들 안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입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적인 사건들은 제자들을 두렵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더 끈기 있게 증언하며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 21, 18)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언제나 살아있고 충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인생사 속을 들여다보면 늘 즐겁지는 않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희망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전하며, ‘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안 속에서 나그넷길을 걷는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8항 참조). 그리고 모든 인간적 희망이 고갈된 듯이 보일 때,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게 하시리라는 유일한 확신이 더 강해지고 하늘과 땅보다 더 확고해집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과 사회의 박해, 고통, 어려움, 억압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우리 편이 되어주시는 분으로 드러내십니다. 하느님께서 항상 가장 보잘것없는 이, 고아, 과부, 이방인의 편이 되어주신다고 이야기하는 맥락이 성경 전체를 관통합니다(신명 10, 17-19 참조). 그리고 당신의 아드님,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친밀감은 사랑의 정점에 이릅니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의 현존과 말씀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과 희년이 됩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루카 4, 18-19 참조).

우리 또한 오늘,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가난한 이들의 희년’을 지내며 이 은총의 해에 특별한 방식으로 참여합니다. 온 교회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날, 저는 제일 먼저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Dilexi te -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묵시 3,9 참조)라는 주 예수님의 변함없는 말씀을 강력히 전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작고 가난한 우리 앞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다른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이 바라보시고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어쩌면 특히 오랜 가난과 새로운 가난으로 여전히 상처 입은 우리 시대에, 그분의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환대와 정의의 장소”(사도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t te), 39항)가 되길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 빈곤이 우리의 세상을 짓누르고 있습니까! 무엇보다 물질적 빈곤이지만, 특히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윤리적이고 영적인 상황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비극은 바로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우리로 하여금 전체적인 관점에서 빈곤을 바라보도록 요구합니다. 때로는 긴급한 필요에 대응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더 일반적으로는 외로움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관심의 문화를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디서 살든, 다른 사람에게, 각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이러한 자세를 우리 가족에게 전하여, 일터와 공부하는 곳, 다양한 공동체, 디지털 세계 등 어디에서든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우리 자신을 끝까지 부추겨 하느님의 온유한 사랑의 증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특히 안타깝게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상황은 우리를 무기력한 상태에 빠트리는 듯 여겨집니다. 하지만 무력감의 세계화는 어떤 거짓말에서, 이런 역사가 늘 그래왔고 바뀔 수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반면에 복음은 바로 역사의 격변 속에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오늘날 가난한 이들 가운데에서 이 구원의 살아있는 표징이 되어야 합니다.
빈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하지만, 사회에서 책임 역할을 맡은 모든 이에게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국가 지도자들과 책임자들이 가장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 줄 것을 촉구합니다. 정의가 없이는 평화도 있을 수 없으며 가난한 이들은 이주와 부르짖음 등 수많은 방식으로 이를 일깨워줍니다. 하지만 그들의 부르짖음은 종종 모든 사람을 무시할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을 잊은 채 자신들의 운명에 맡기도록 하는 복지와 진보라는 신화에 억눌려 있습니다.
저는 자선 활동가, 수많은 자원봉사자, 가장 가난한 이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헌신하는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동시에 사회에서 한층 더 비판 의식을 가지도록 격려합니다. 여러분은 가난한 이들의 문제가 우리 신앙의 본질로 다시 이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살 자체이며 단지 사회학적 범주가 아닙니다(사도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t te), 110항 참조). “교회는 어머니처럼 길 위에 있는 이들을 동반합니다. 세상이 위협을 볼 때, 교회는 자녀를 봅니다. 세상이 장벽을 세울 때, 교회는 다리를 놓습니다”(사도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t te), 75항).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 쓴 것처럼(2테살 3,6-13 참조),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자기 자신 안에 갇힌 채 타인과 역사에 무관심해지는 종교적 내면주의(역주- ‘하느님과 나’라는 개인적인 종교 체험에 중점을 둠으로써 종교적 애착과 배타주의에 빠지는 위험성이 있는 영성)에 빠져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하느님 나라를 찾는다는 것은 인간적인 공존의 삶이 아무도 예외 없이 모든 이를 위한 형제애와 존엄성의 공간이 되도록 변화시키려는 열망을 뜻합니다. 인생의 모퉁이마다 최종 목적에 대해 무심하고 우리와 여정을 함께하는 이들에게 무관심한, 주의가 산만한 여행자들처럼 살아갈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번 가난한 이들의 희년에 가장 궁핍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 겸손과 자기 부정의 길에서 그리스도를 따랐던 성인 성녀들의 증거에서 영감받도록 합시다. 특히 저는 “하느님의 방랑자”라는 삶을 통해 모든 가난한 노숙자들의 수호성인이 되는 특징을 지닌 성 베네딕토 요셉 라브르의 모습을 떠올리고 싶습니다. ‘마니피캇’(성모 찬송)에서 하느님의 선택을 우리에게 계속 일깨워주시고 목소리 없는 이들을 대신하여 말씀하시는 동정 성모님께서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논리에 들어가도록 도와주시길 빕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삶 안에 환대하시고, 용서하시며, 상처를 돌봐주시고, 위로하시며, 치유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항상 가득하길 바랍니다.


번역 이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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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1월 2025, 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