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2월 5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1권 54, 55:

 

54. 이제 이 모든 주제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신실한 영혼이 악습을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쏟는 노력보다 더 고되고 막중한 헌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 지체(肢體)가 있다면 그것을 잘라내야 하며, 그 고통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혼인의 신의를 지키기 위하여, 비록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하더라도 불의한 타락, 곧 간음이라는 죄에 이르지 않는 모든 일들을 감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외모가 볼품없거나, 몸이 허약하거나, 앞을 못 보거나, 듣지 못하거나, 다리를 절거나, 그와 유사한 결점이 있는 경우, 혹은 늘 병에 걸려 고통에 시달리며 우울증에 빠지기 쉽거나 그 어떤 끔찍한 상태에 있더라도, 간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혼인의 신의와 부부 결합의 이름으로 그 모든 것을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합법적이지 않다면, 더욱이 누구도 불법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음행을 피하고 모든 추잡한 타락에서 벗어나십시오. 항상 진실만을 말하며, 빈번한 맹세로 자신의 말에 권위를 세우려 하지 말고 오히려 성실한 품행으로 증명하십시오. 그리스도인 군사의 굳센 요새 안으로 피신하여, 우리가 앞서 언급한 것들을 포함한 정말 수많은 악한 관습을 위에서 내리누르듯 단호히 타파해야 합니다. 이는 다른 모든 악습까지도 함께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토록 무거운 고난을 감히 마주할 용기를 낼 자가 누구겠습니까? 오직 정의를 뜨겁게 사랑하며, 그에 대한 굶주림과 갈증에 거의 불타오르듯 사로잡혀, 그것으로 충만해지기 전에는 참된 생명을 가진 것으로 여기지 않고, 마침내 하늘나라를 위하여 필사적으로 달려들 만큼 간절한 사람 외에 누가 가능하겠습니까?

그러한 간절함이 없다면, 충분히 강해질 수 없으며, 이 세상의 애호가들이 너무 힘들고 어렵고 버겁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견뎌내며 나쁜 습관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마태, 5,6).


55. 그러나 이렇듯 고된 정진의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모질고 험난한 시련 속을 나아가며 온갖 유혹에 포위된 듯한 상황에 부닥치고, 여기저기서 과거의 잘못된 삶의 괴로움들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을 보게 될 때, 그는 자신이 시작한 일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이 도움을 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한 어떠한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위로부터 도움을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타인의 연약함을 견디어 주고 힘닿는 데까지 남을 돕겠다는 결심 외에 다른 어떤 결단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그 흐름에 따라 자비에 관한 계명들을 살펴봅시다. 온유함과 자비로움은 마치 같은 것을 말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경건함으로 인해 자신의 죄에 대해 내려진 하느님의 심판에 맞서지 않으며,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하느님의 말씀에도 대항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맞서지 않는 이에게 딱히 어떤 유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자비로운 사람은 대항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에게 맞섬으로써 더 악해질 수 있는 사람을 부드럽게 돕고, 그를 바로잡으려 애씁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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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2월 2026, 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