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2월 10일
6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마태 5, 41). 이는 발로써 이를 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그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동일한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도, 어떤 성인이나 심지어 주님 자신께서 그러한 일을 실제로 행하셨다는 예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기꺼이 취하신 인성 안에서 삶의 모범을 우리에게 남기고자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 모든 성인들은 어떠한 장소에서든 자신들에게 부당하게 요구된 모든 것을 온유한 마음으로 인내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는 표현은 단지 예시로 말해진 것이라고 믿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 3에 이르기 위함입니까? 곧,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와 같은 태도를 통해 자신이 완전한 정의를 실천하고 있음을 기억하게 하려는 뜻이며, 구원하고자 하시는 이들의 연약함을 자비로이 감내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까?
따라서 주님께서는 세 가지 예시를 통해 이 계명들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자 하셨음이 자명합니다. 첫째는 "누군가 네 뺨을 치거든"이며, 둘째는 "누군가 네 속옷을 가지려 하거든"이고, 셋째는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 번째 예에서는 하나에 둘을 더하여 셋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 숫자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완전함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곧, 주님께서는 명령을 내리실 때 가장 견딜 만한 것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강도를 높이시어, 마침내 우리에게 갑절의 고통까지도 견뎌낼 것을 권고하신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먼저 오른쪽 뺨을 맞은 뒤에 다른 뺨까지 내어주라고 명하셨는데, 이는 먼저 더 큰 것을 견뎌냄으로써 이후에는 덜 고통스러운 것을 감내할 준비가 되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오른쪽’이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그것은 언제나 왼쪽보다 더 소중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더 소중한 것에서 어떤 고통을 견뎌낸 사람이라면, 덜 소중한 것에서 고통을 감내해야 할 때에는 그 고통이 더 적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속옷을 빼앗으려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내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가치가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더 높은 두 가지 물건에 관한 것이지, 갑절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 번째 예시인 천 걸음에서는, 이천 걸음을 더 보태어야 하므로 두 배로 인내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는 곧 누군가 그대에게 악을 행하려 할 때, 그것이 이전보다 덜하든, 대등하든, 혹은 그 이상이든 간에 마땅히 인내로써 견뎌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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