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2월 13일
64. 영혼을 육체로부터 해방시키는 이 죽음이 결코 두려워할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던, 위대하고 거룩한 인물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심정을 고려하여 특정 범죄를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 이는 살아 있는 이들에게 건전한 두려움을 심어 주기 위함이요, 처형되는 자들에게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반복했을 '죄'가 더 큰 해악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경솔하게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하느님으로부터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불을 간청하여 많은 이를 죽게 하고, 나아가 친히 자기 손으로 이를 행한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 전체에 유익을 끼치고자 하는 뜻에서, 하느님께 영감을 받은 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결코 경솔하지 않게 같은 일을 행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엘리야가 행한 일을 본보기로 들어, 자신들을 맞아들이지 않은 이들을 불태워 없애기 위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 달라고 간청할 수 있는 권한을 자신들에게도 주시기를 주님께 요청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거룩한 예언자의 본보기를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지한 조야함 속에 자리 잡은 비천한 복수의 욕망을 꾸짖으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사랑으로써의 교정을 원한 것이 아니라, 증오에 이끌려 오직 복수만을 갈망하고 있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가르치신 후, 또한 승천하신 뒤 열흘 후에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그들 위에 부어 주신 다음에도, 이러한 처벌들이 완전히 사라지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구약 시대에 비해서는 훨씬 드물게 이루어지게 하셨을 뿐입니다.
사실 그때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두려움에 눌려 마치 노예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랑의 법에 따라, 주로 자유인으로서 양육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에서 읽을 수 있듯이, 사도 베드로의 말 한마디에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가 바닥에 쓰러져 목숨을 잃었으며, 그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그대로 매장되었습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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