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들의 복음 해설: 2025년 0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1티모 3,1-13
복음: 루카 7,11-17
교황님들의 복음 해설
연민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감정, 마음과 직감의 감정,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감정입니다. 단순히 “염려”나 “안타깝네, 가엾은 사람들이군”과 같은 감정이 아닙니다. 아니, 다릅니다. 연민은 마음을 아우릅니다. “함께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와 고아의 문제에 관여하십니다. (...)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여기 수많은 군중이 있는데, 왜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그냥 두십시오. (...) 인생은 그런 겁니다. (..). 삶은 원래 힘들고, 비극은 늘 일어나는 법이잖아요. (...)”
그러나 예수님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는, 당신을 따르고 당신 말씀을 듣고 있는 무리보다도, 그 과부와 죽은 아들이 더 중요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분의 마음과 내면이 그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연민을 느끼셨습니다. 연민은 구체적입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다가가 만지는 것입니다. 곧 만지는 것입니다. 그분은 연민을 가지셨습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동사를 발견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연민을 느끼셨습니다. 둘째, 그분은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셋째, 기적을 행하시어 그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잘 가거라, 나는 내 길을 간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분은 죽은 아이를 일으키신 다음,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그 고유의 자리에 앉히시고자 제자리에 않히시고자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구원을 이루는 기적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연민을 가지시고, 당신의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셨으며, 우리 모두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 존엄성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새롭게 창조하신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7년 9월 19일 산타 마르타의 집 강론).
링크: https://www.vaticannews.va/it/vangelo-del-giorno-e-parola-del-giorno/2025/09/16.html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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