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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5 Giubileo del Mondo Missionario e Giubileo dei Migranti 2025.10.05 Giubileo del Mondo Missionario e Giubileo dei Migranti  (@Vatican Media)

교황, "세상이 변하려면 우리가 변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돈을 섬길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10월 4일 열린 희년알현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선택을 통해 희망에 도달하는 방법을 강조했다: 희년은 또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의 문을 열어줍니다. 특히 부의 분배가 더욱 정의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이 땅이 모든 이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열어줍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현실은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올해 우리는 ‘정의를 선택할 것인가?, 불의를 선택할 것인가?, 하느님을 섬길 것인가, 돈을 섬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희년알현
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교리교육
성 베드로 광장
2025년 10월 4일

교리 교육 6. 희망은 선택하는 것이다.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모두 환영합니다!

방금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루카 16,13-14)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일부 사람들이 그분을 비웃었다고 전합니다. 그들에게는 가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마음은 돈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찔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희망의 순례자로서 이곳에 오셨습니다. 희년은 우리 마음이 용서와 자비를 발견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희망의 시간입니다. 희년은 또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의 문을 열어줍니다. 특히 부의 분배가 더욱 정의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이 땅이 모든 이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열어줍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현실은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올해 우리는 ‘정의를 선택할 것인가?, 불의를 선택할 것인가?, 하느님을 섬길 것인가, 돈을 섬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희망하는 것은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분명한 것은 우리가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례란 선택인 것입니다. 새로운 시간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성문(聖門)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둘째 의미는 보다 더 깊고 섬세한데 희망한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것이란 점입니다: 왜냐하면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절망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슬픔, 곧 게으름의 가장 일반적인 결과 중 하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험하는 사람은 죽음보다 더 나쁜 내적 게으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희망하는 것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선택할 줄 알았던 한 여인, 곧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용감했고, 시대의 흐름을 거슬렀던 젊은이였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축일에 성녀를 말하는 것은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가 복음적 가난을 선택함으로써 가족과의 관계까지 끊어야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성이었기에, 그의 선택이 주는 충격은 사회적으로 덜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녀 클라라의 선택은 훨씬 더 급진적이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프란치스코처럼 살기를 원했습니다. 성녀 클라라의 선택은 ‘형제들’처럼 자유로운 여인으로서 살기를 원했던 것이기에 훨씬 더 충격적입니다.

성녀 클라라는 복음이 요구하는 바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도시 안에서 진지하게 복음을 받드는 것은 일종의 혁명처럼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도, 지금도, 선택이 필요합니다! 클라라 성녀는 선택했고 이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줍니다.

성녀 클라라는 선택했고, 그 선택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그런 열망을 따르는 그녀의 용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결과를 보게 됩니다. 첫째는 같은 지역에 살던 많은 청년들이 그녀와 같은 용기를 갖게 되었고 예수님의 가난과 참행복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녀의 선택은 타들어가는 짚더미 같은 그런 불꽃 아니었고 우리 시대에까지 타오르는 불꽃인 것입니다. 그래서 클라라 성녀의 선택은 전 세계에서 성소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주었고 그렇게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이처럼 교회는 젊음을 간직한 교회이기에, 젊은이들을 끌어당깁니다. 아시시의 클라라는 젊은이들이 복음을 좋아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줍니다. 지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선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들을 짊어지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다른 이들이 선택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도록 합니다. 이것은 거룩한 닮아가기 입니다. 이것은 그저 흉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각 자가 복음을 선택할 때 자기 자신을 선택하는 것이 됩니다. 자신을 잃어버리면서 자신을 되찾는 것입니다. 경험은 이것을 보여주고 있고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리고 돈이나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정의를 섬기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처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를 가진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것이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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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10월 2025, 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