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레오 14세, “튀르키예가 민족 간의 안정과 화합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바랍니다.”

레오 14세 교황의 첫 사목 방문에서의 첫 연설은 국가 당국자들에게 향했다. 교황은 사회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사실, 사회는 다채로울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하셨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튀르키예의 단합을 위해 모든 극단적인 분열을 넘어서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열망을 강조하셨다. 이어서 "모든 하느님 자녀의 존엄성과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라고 호소하며, 부부애와 여성에 대한 존중, 그리고 "정의롭고 항구한 평화"를 위한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사목 방문

이즈니크(튀르키예) 순례 및
제1차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 기념
튀르키예 및 레바논 사목 방문

튀르키예 당국, 시민사회 대표
및 외교단에 행한 교황 성하 연설

앙카라, 대통령궁, 2025년 11월 27일

 

대통령님,

존경하는 고위 인사들과 외교 사절단 여러분,

신사 숙녀 여러분!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이 땅에서, 오늘날 아브라함의 자손들과 전 인류에게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형제애를 촉구하는 이 순간에, 저의 첫 사목 방문을 이 나라에서 시작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여러분의 나라가 가진 자연의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피조물을 보호하도록 촉구합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이곳의 문화적, 예술적, 영적인 풍요로움은 세대, 전통, 그리고 다양한 사상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위대한 문명들이 형성되며, 그 안에서 발전과 지혜가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됨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 세계가 수 세기에 걸친 갈등을 겪어 왔고, 여전히 정의와 평화를 짓밟는 야망과 결정들로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난관들 앞에서, 위대한 과거를 지진 민족이라는 사실은 하나의 선물이자 동시에 중요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이번 방문의 상징으로 선택된 다르다넬스 해협의 다리 이미지는 여러분 나라의 특별한 역할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보다도 내부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발전시키며, 이를 통해 지중해와 전 세계에서 현재와 미래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시아와 유럽,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기에 앞서, 그 다리는 먼저 튀르키예 내부에서 자국민을 하나로 묶고, 그 구성 요소들을 통합하여 다양한 민족적, 문화적 감수성이 만나는 교차로를 만들어냅니다. 이를 일률적으로 동화시킨다면 오히려 빈곤해질 것입니다. 사실, 사회는 다채로울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것이며, 그 사회 내 다양한 정체성 간의 다리들이 그것을 시민사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 공동체는 점점 더 양극화되고 극단적인 입장들에 의해 분열하고 있습니다.

저는 튀르키예의 통합에 그리스도인들이 긍정적으로 이바지하고자 한다는 점을 확언 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튀르키예 정체성의 일부이며, 자신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정체성은 성 요한 23세께서 깊이 아끼셨으며, 그분은 여러분의 국민과 깊은 우정 덕분에 여러분이 기억하는 '튀르키예 교황'이십니다. 1935년부터 1945년까지 이스탄불의 라틴 대목구 서리와 튀르키예 및 그리스의 교황 사절로 재직하신 성 요한 23세 교황님은 가톨릭 신자들이 여러분의 새로운 공화국 건설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큰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그분은 그 시절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보십시오. 우리 이스탄불의 라틴 가톨릭 신자들과 아르메니아, 그리스, 칼디아, 시리아 등 다른 예식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곳에서 소수에 불과하며, 우리는 단지 외적인 접촉만을 가진 채, 광대한 세상의 표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 즉 동방정교회 형제들, 개신교도들, 유대인, 무슬림, 다른 종교의 신자들이나 비신자들과 구별되기를 원합니다. […] 각자가 자기 자신과 가족, 또는 국가적 전통에 충실하며, 좁은 공동체 안에 갇혀 있는 것이 논리적으로 보입니다. […]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복음의 빛과 가톨릭 교리의 원칙에 비추어볼 때, 이것은 잘못된 논리입니다.”[1] 그 이후로 교회와 여러분이 속한 사회 내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들은 여전히 많은 빛을 발하고 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만남의 문화'라고 정의하신 복음적이고 더 진실한 논리를 계속해서 고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의 존경하는 전임 교황께서는 지중해의 심장부에서 '무관심의 세계화'에 맞서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가난한 이들과 지구의 울부짖음을 경청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신'(시편 103, 8) 유일하신 하느님을 닮도록 자비로운 행동을 고취하셨습니다. 이 거대한 다리의 이미지는 이러한 측면에서도 유익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하늘과 땅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이 변하여 그분의 마음과 같아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물리학의 법칙에 도전하는 듯한,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다리와 같습니다. 내적인 사적 차원뿐만 아니라, 가시적이고 공적 차원을 지닌 사랑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정의와 자비는 힘의 법칙에 도전하며, 연민과 연대가 발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그렇기에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튀르키예와 같은 사회에서는 모든 하느님 자녀의 존엄성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남성과 여성, 자국민과 외국인, 가난한 이들과 부유한 이들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공동선을 증진하고, 모든 사람에 대한 존중을 실천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은 큰 도전이며, 특히 기술 발전이 불평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지역 정책과 국제 관계를 재편성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인공지능조차 우리의 편향과 선호를 그대로 재현하고, 자세히 살펴보면 그 과정의 시작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발전의 방향을 수정하고, 이미 훼손된 인류 공동체의 단합을 회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인류 가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과 각자의 경험을 연결하는 고리, 즉 다리 역할을 하라고 우리를 초대하는 비유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가족은 사회생활의 첫 번째 핵심 단위였으며, 그 안에서 타인이 없으면 '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튀르키예 문화에서 가족은 여전히 큰 중요성을 지니며, 그 중심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가족 내에서 사람들은 시민적 공존을 위한 기본적인 태도와 공동선을 향한 첫 번째 민감성을 키워 나갑니다. 물론, 때로는 어떤 가족이 고립되거나 갈등을 겪으며, 일부 구성원이 자기표현을 억제하여 그들의 재능 발달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주의적 문화나 결혼과 출산에 대한 경멸 속에서는 더 많은 삶의 기회와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소외된 고독이 사업으로 전락하는 소비주의 경제의 기만에 대해, 우리는 애정과 유대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로 응답해야 합니다. 함께할 때만 우리는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만 우리의 내면은 깊어지고, 우리의 정체성은 강해집니다. 근본적인 유대를 경시하고 그 한계와 취약성까지도 지탱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더 쉽게 편협해지고, 복잡한 세상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실제로 가족생활 속에서는 결혼의 사랑과 여성의 기여가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특히 여성들은 학문과 직업, 문화,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점차 국가와 국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족을 지원하고 여성의 기여가 사회의 온전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러한 중요한 노력을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대통령님, 튀르키예가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봉사하는 안정의 요인이자 민족 간 화합의 촉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튀르키예를 방문한 네 분의 교황—1967년 성 바오로 6세 교황님, 197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2006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문은 성좌는 튀르키예 공화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나라가 동양과 서양,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다리이자 문화와 종교의 교차로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자 협력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번 방문의 계기인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은 만남과 대화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며, 최초의 여덟 차례 세계 공의회가 현재 튀르키예 땅에서 열렸다는 사실 또한 이를 뒷받침합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대화를 촉진하고 이를 확고한 의지와 인내로 실천하는 인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 이후 국제기구들이 설립된 시기를 지나, 우리는 지금 강력한 갈등의 국면을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으며, 경제적, 군사적 힘의 전략이 우위를 차지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조각난 제3차 세계 대전'이라고 표현한 상황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추세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인류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파괴적인 역동성에 소모되는 에너지와 자원은 인류가 하나 되어 해결해야 할 진정한 도전, 즉 평화, 기아와 빈곤 퇴치, 보건과 교육, 그리고 피조물 보호에 쓰여야 할 자원들을 빼앗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좌는 오직 영적이고 도덕적인 힘으로, 모든 국가가 각 개인과 모든 남녀의 온전한 발전을 위한 노력에 협력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도움을 겸손히 신뢰하며, 진리와 우정 속에서 함께 나아갑시다.

***
[1] 안젤로 G. 론칼리(성 요한 23세 교황), 이스탄불에서의 설교. 강론, 연설 및 사목 노트 (1935-1944), Olschki, 피렌체 1993, 367-368.


번역 박수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27 11월 2025,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