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2024.11.03 Discorso della montagna 2024.11.03 Discorso della montagn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12월 17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1권 13:

13.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 5,11-12).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현세의 쾌락과 재물을 추구하는 이들은 모두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참된 행복은 예언자들이 교회에 공동체에 “한껏 화사하게 꾸민 임금님 딸이 금실로 수놓은 옷에 싸여 안으로 드는구나”(시편 45,14)라고 말하는 것처럼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서 찾아야 합니다.

실제로 교회는 외적으로는 저주받으며, 박해와 비방을 예고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에 따라 하늘에서 받을 큰 상이 약속되어 있으며, 이는 이미 고난을 겪는 이들이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으며,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5,3-5).

그러나 이러한 고난을 견디더라도, 그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것을 평온한 마음으로, 아니 오히려 기쁨으로 감내하지 않는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워 수많은 영혼을 미혹시키는 이단자 중에도 유사한 박해를 겪는 이들이 많지만, 그들은 이 보상에서 제외됩니다. 왜냐하면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의로움 때문에”라는 말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올바른 믿음이 없는 곳에는 결코 정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로마 1,17)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분열을 일으킨 자들(분파자들)도 자신들이 겪는 고난으로 어떠한 보상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곳에는 정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로마 13,10) 만약 이교자가 이러한 사랑을 지니고 있다면, 그들은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콜로 1,24)을 찢어 분열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번역 박수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16 12월 2025, 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