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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에서 레오 14세, “상처와 불의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 되어 평화의 일꾼이 되십시오”

"백향목의 나라"인 레바논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많은 고통을 겪은 국민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평화는 "항상 열려 있는 건설 현장"이라고 말씀하셨다. 교황은 수많은 레바논 국민의 이주를 일으킨 전 세계적인 불안정의 "파괴적인 여파"를 다시 한번 언급하셨다. "기억의 치유"가 필요하며 공동선을 최우선으로 인식하고 여성을 존중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모든 종교 및 시민 단체 구성원들에게 국제 사회에 민감하게 호소하여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제공할 것을 촉구하셨다.

제1차 니케아 보편 공의회 1,700주년 기념
레오 14세 교황의 이즈니크(튀르키예) 순례 및
튀르키예와 레바논 사목 방문
(2025년 11월 27일 - 12월 2일)

국가 당국, 시민 사회 대표 및 외교단과의 만남에서 행한
교황 성하의 연설

2025년 11월 30일 토요일, 베이루트, 대통령궁

대통령님,

존경하는 시민 및 종교 지도자 여러분,

외교단 여러분,

신사 숙녀 여러분,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여러분을 만나 뵙고 이곳을 방문하게 되어 큰 기쁨을 느낍니다. 이곳에서 “평화”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갈망이자 소명이며, 선물이자 늘 열려 있는 건설의 현장입니다. 여러분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 나라의 권한을 부여받은 분들입니다. 바로 그 권한을 바탕으로, 이번 방문의 근본 영감으로 선택된 예수님의 말씀,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 9)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물론 이곳과 전 세계에는 수많은 레바논인이 매일 조용히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국민 가운데 중요한 공적 직무를 맡고 있기에, 평화를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특히 복된 이들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매우 복잡하고 갈등이 많으며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레바논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부한 문화유산은 이 나라를 방문했던 제 모든 전임자가 이미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를 더욱 빛나게 하는 귀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련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언제나 용기 있게 다시 일어서는 여러분의 정신입니다. 이러한 회복력은 진정한 평화의 일꾼에게 필요한 특성입니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향한 헌신과 사랑은 눈앞의 패배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실망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현실을 희망으로 받아들이며 멀리 내다보는 힘입니다. 평화를 세우기 위해서는 끈기가 필요하고, 생명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역사를 돌아보며 질문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백성이 단 한 번도 완전히 무너진 채 희망 없이 남겨지지 않도록 지켜 준 그 놀라운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레바논은 다양한 공동체가 모여 이루어진 나라지만, 한 가지 공통의 언어로 마음을 잇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레반트 아랍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언어를 통해 여러분의 위대한 과거는 헤아릴 수 없는 보석 같은 가치를 세상에 전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희망의 언어’입니다. 이 언어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곳곳에서는 일종의 비관주의와 무력감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치 몇몇 소수가 공동선을 해치며 결정을 내리는 상황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생명을 해치는 경제(「복음의 기쁨」 53항 참조)의 결과로, 레반트 지역을 뒤흔든 세계적 불안정과 정체성의 극단화, 그리고 여러 갈등 속에서 깊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늘 다시 일어서기를 바랐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해왔습니다.

레바논은 활기차고 잘 교육된 시민사회와, 온 나라의 꿈과 미래를 형성할 수 있는 젊은이들로 풍요로운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국민과 분리되지 않고, 다양성으로 풍부한 이 국민을 위해 헌신과 책임감으로 봉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의 언어, 곧 언제나 다시 시작할 용기를 통해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희망의 언어’를 울려 퍼지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살고 함께 성장하려는 열망이 각 집단을 조화로운 하나의 교향곡처럼 어우러지게 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레바논인이 고국과 맺고 있는 깊은 정서적 유대가 여러분에게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 뿌리를 사랑하며, 스스로 속해 있다고 느끼는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경험과 역량으로 여러분을 지원합니다.

이제 평화의 일꾼이 가진 두 번째 특징으로 나아가겠습니다. 평화의 일꾼은 다시 시작할 줄 아는 것뿐만 아니라, 화해라는 어렵고도 험난한 길을 선택할 줄 압니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어떤 상처들은 치유되기까지 오랜 세월, 때로는 여러 세대를 필요로 합니다. 기억을 돌보지 않고, 잘못과 부당함을 겪은 이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없다면, 평화는 쉽게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와 논리에 갇혀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실과 화해는 항상 함께 성장합니다. 이것은 한 가정, 다양한 공동체, 한 나라의 여러 구성원 사이뿐 아니라, 국가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화해는 공동의 미래를 향한 목표와, 과거와 현재의 상처를 넘어 선(善)이 승리하리라는 믿음 없이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화해의 문화는 몇몇 사람의 용기나 선의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을 사익보다 우위에 두는 제도와 권위가 반드시 함께해야 합니다. 공동선은 여러 이해관계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각자의 목표를 최대한 가까이 모으고, 혼자 걸을 때보다 모두가 더 나은 길로 나아가도록 움직이는 힘입니다. 평화는 단지 같은 지붕 아래 따로 살아가는 이들 사이의 불안한 균형이 아니라, 화해된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며, 더 나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미래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때 우리의 시야가 모든 담장과 경계를 넘어 확장될 때, 평화는 우리를 놀라게 하는 풍요로움이 됩니다. 때로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모든 것을 명확히 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화해로 이끄는 길은 오해 속에서도 서로 마주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있다는 가장 큰 진리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모두 서로, 그리고 그분과의 관계 안에서 충만한 삶에 이르도록 마련하신 계획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평화의 일꾼이 지닌 세 번째 특징은 희생이 필요할 때도 머물 줄 아는 용기입니다. 때로는 떠나는 것이 더 쉽고, 다른 곳에서 사는 것이 더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그곳에 사랑과 헌신의 가치를 발견하며, 고향에 머물거나 다시 돌아오는 일은 진정한 용기와 통찰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곳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도 불안정, 폭력, 빈곤 등 많은 위협 때문에 청년과 가정이 고향을 떠나 미래를 찾는 아픔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해외에 있는 레바논인들이 여러분에게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기여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국민 곁에 머물며 사랑과 평화의 문명을 함께 세워가는 것은 여전히 깊이 존중받아야 할 가치입니다.

교회는 단지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이들의 존엄성을 염려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무도 자기 뜻과 무관하게 떠나도록 강요받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이들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류의 이동은 만남과 상호 풍요로움의 큰 기회이지만, 그것이 개인을 그가 특별한 방식으로 정체성을 형성한 고유한 장소와의 유대에서 분리하지는 않습니다. 평화는 언제나 지리적, 역사적, 영적 유대로 이루어진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자랍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대를 지키고 키워가는 이들을 응원해야 하며, 지역주의나 과도한 민족주의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좁은 지역주의를 넘어, 세상을 향한 전망을 가져야 합니다. 집이 더 이상 가정이 아니라 닫힌 공간이 될 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세계적 전망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역적 차원은 세계적 차원에 없는 요소, 즉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될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편적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두 축입니다.” (142항)

이것은 레바논뿐 아니라 레반트 전체가 직면한 과제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고국을 떠나 다른 곳에서 미래를 찾도록 강요받지 않게 하려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다른 곳이 아닌, 자기 땅에서 평화를 찾고, 평화의 주인공이 되도록 격려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그리고 레바논 사회의 모든 종교적·시민적 공동체는 이 과제에 함께 참여하여, 국제 사회의 인식을 높이는 데 이바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평화를 지키고 건설하는 이 힘들고 인내가 필요한 여정에서 여성들의 필요한 역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성은 삶과 사람들 사이의 깊은 유대를 보존하고 키우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평화를 이루는 독보적인 일꾼입니다. 종교 공동체뿐 아니라 사회와 정치 영역에서 여성들의 참여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함께 전 세계에 진정한 쇄신을 가져오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일구는 여성들, 그리고 레바논이 여전히 생명으로 가득한 나라가 되도록 이 땅에 남거나 돌아오는 젊은이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여러분의 수천 년 전통 속에 담긴 귀한 특징에서 영감을 얻어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이며, 축제 때에 음악은 춤이 되어 기쁨과 친교의 언어가 됩니다. 이 문화적 특징은 우리에게 평화가 아무리 중요해도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자, 먼저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면에서 흘러나와,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큰 멜로디, 곧 신성한 사랑의 선율에 이끌리도록 합니다. 춤추는 사람은 땅을 짓밟지 않고, 가볍게 나아가며, 오히려 자신의 발걸음을 다른 이의 발걸음과 조화시키며 가볍게 나아갑니다. 평화도 이와 같습니다. 평화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여정이며, 우리 마음을 열게 하여 타인을 더 깊이 듣고 존중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평화에 대한 이 열망이 여러분 안에서 자라나, 이미 지금 이 땅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이 땅은 하느님께서 깊이 사랑하시며 지금도 계속 축복하시는 곳입니다.

대통령님, 존경하는 당국자 여러분, 저를 따뜻하게 맞아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이 공동선을 위해 수행하는 귀한 봉사에 대해, 교회와 함께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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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2월 2025, 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