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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1월 18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1권 34:

 

34.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곧 유혹(suggestione), 쾌락(compiacimento), 그리고 동의(consenso)입니다. 유혹 혹은 자극은 기억을 통해서 일어나거나, 혹은 몸의 감각을 통해서 발생합니다. 즉,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향기를 맡고, 맛보고, 만지면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감각들이 기쁨을 준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당한 쾌락은 반드시 절제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단식 중일 때 음식을 보면 식욕이 되살아나고 일정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우리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이성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에 동의한다면, 이는 마음속으로 죄를 짓는 것이며, 비록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오직 하느님께만 알려진 죄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혹은 마치 '뱀'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다음의 단계들을 거칩니다. 즉, 몸의 유연하고 미끄러운 움직임처럼, 우리의 영혼에 환상적으로 일어나는 감정들도 외부 세계에서 유래한 것들입니다. 이 다섯 가지 감각 외에 어떤 은밀한 움직임이 영혼을 자극한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갑작스럽고 미끄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은밀하게 공격하여 생각을 치고 들어올수록, 뱀에 비유하는 것이 더욱 적절해집니다. 이 세 가지는 창세기에서 일어난 일과 비슷합니다. 즉, 유혹과 처음의 제안은 마치 뱀의 유혹처럼, 기쁨은 하와에게서처럼 육체적인 식욕에서 비롯되며, 이성에서는 동의가 일어납니다. 이 모든 것이 완성되면, 인간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즉, 마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처럼, 의롭고 영광스러운 빛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창세기 3,1). 이는 완전히 정당한 일입니다. 사실, 설득하려는 자는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그 질서에 따라 그 품격대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영혼은 바르게 정돈된 더 높은 피조물들로부터 더 낮은 피조물의 단계로 스스로 낮아져서는 안 됩니다. 누구도 이 일을 하도록 강요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사람이 이렇게 하였다면, 그는 하느님의 의로움에 의해 벌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짓는 죄는 결코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쾌락은 습관이 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거나, 너무 미미하여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동의하는 것은 중대한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불법적인 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동의할 때, 그 죄는 이미 마음속에서 짓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만약 외부적인 행위에까지 이르게 되면, 정욕(libidine)이 채워지고 사라지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 후 유혹이 다시 찾아오면, 그 쾌락은 훨씬 더 강렬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비록 처음에는 그 강도가 약하더라도, 반복되는 행위들로 인해 그것은 결국 습관이 되어버립니다. 습관을 이겨내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노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습관도 하느님의 인도와 도움으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옛 질서와 이전의 평화가 회복될 것입니다. 즉, 남자는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했던(1코린11,3) 때처럼 말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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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월 2026, 1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