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2월 12일
63. 그러나 교정을 목적으로 하는 처벌까지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로 그러한 처벌 또한 자비의 한 표현이며, 교정하고자 하는 대상으로부터 가해지는 모든 것을 인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의 결단과도 상충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러한 방식으로 되갚을 수 있는 사람은, 대개 복수를 갈망하는 이들을 불타오르게 하는 그 증오심을 사랑의 관대함으로 이미 극복한 사람뿐입니다.
부모가 아이의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매를 든다 하여, 그들이 자녀를 증오하는 것처럼 보일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참으로 사랑의 완전함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드러나듯이, 하느님 아버지 자신을 본받음으로써 우리에게 제시됩니다. 곧,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미워하는 이들에게 선을 행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같은 하느님 아버지에 대하여, 예언자의 입을 통해서는 또한 이렇게 언급됩니다. “아버지가 아끼는 아들을 꾸짖듯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꾸짖으신다”(잠언 3,12). 주님께서도 또한 말씀하십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48).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은 질서를 유지할 권한을 가진 이가 처벌을 내리되, 나이 때문에 미워할 수 없는 아이를 아버지가 징계하는 바로 그 마음가짐으로 처벌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죄를 처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기보다, 사랑에 의해 교정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는 매우 명확한 본보기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정을 받는 이는 처벌로 인해 더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정으로 인해 복된 사람이 되기를 의도합니다. 다만, 우리가 교정하고자 하는 이가 우리에게 가할 모든 고통에 대하여, 그를 처벌할 권한의 유무와 상관없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인내로써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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