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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2월 18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1권 69, 70:

 

69. 이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54)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 43-48).

원수와 박해자까지도 사랑하라 명하는 이러한 사랑 없이, 과연 누가 위에서 제시된 계명들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지친 영혼에 참으로 유익한 자비의 완덕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으로서 완전하시고, 영혼은 영혼으로서 완전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70. 여기서 우리는 바리사이들의 의로움 안에도 일정한 점진적 단계가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의로움은 구약의 율법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마도 많은 이가 그러하겠지만,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이들조차 미워하곤 합니다. 예컨대, 자신의 방탕함을 억제하려는 부모를 미워하는 방탕한 자녀들처럼 말입니다.

그보다 높은 단계에는, 비록 원수는 여전히 미워할지언정 이웃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의 명령에 따라, 원수까지 사랑하기에 이를 때 비로소 자애로움과 완전한 애덕에 도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낮은 단계의 사랑은 비록 무언가 가치가 있을지라도, 사실 세리들조차 할 수 있는 매우 낮은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율법에 기록된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라는 말씀은, 의로운 이에게 내리는 명령이 아니라, 아직 지극히 불완전한 이들에게 허용된 관용으로 이해해야 마땅합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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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월 2026, 1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