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2월 3일
51.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3-37).
바리사이들의 정의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마라"라는 수준이었지만, 하늘나라의 정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맹세하지 마라"하고 가르칩니다. 말하지 않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수 없듯이, 맹세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 맹세를 할 위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맹세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증인으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사도 바오로가 종종 맹세했을 때 주님의 명령을 어긴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 장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맹세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갈라 1,20) 또한 “하느님이시며 주 예수님의 아버지신 분, 영원히 찬미 받으실 분께서는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아십니다.” (2코린 11,31)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 아드님의 복음을 선포하며 내 영으로 섬기는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로마 1,9)
어떤 사람은 "맹세는 반드시 그 사람의 이름을 명시할 때만 해야 한다"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맹세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이라고 하지 않고 "하느님이 나의 증인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논쟁을 좋아하거나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두 표현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도 맹세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여러분의 영광을 위해, 나는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1코린15,31)라고 말했을 때, 이는 분명히 맹세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가 "너희 영광이 나로 하여금 매일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고 해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그의 가르침 덕분에 나는 지혜로워졌다" 또는 "그의 가르침을 통해 나는 완전히 배웠다"라는 식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오로 사도가 진정으로 맹세하려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그리스어 성경에 기록된 “Νὴ τὴν καύχησιν ὑμετέραν”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오직 맹세를 할 때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맹세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아무도 맹세를 좋은 일로 여기고 자주 맹세하다 보면 결국 거짓 맹세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맹세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사람은 맹세를 좋은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로 간주해야 하며, 최대한 자주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맹세는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것을 믿게 할 필요가 있을 때만 사용해야 하며, 그때만 맹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라는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온다”라는 말씀은 정말로 유익한 것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즉, 만약 맹세를 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설득하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병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병은 분명히 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 이상의 것이 악이라고 말한 것이지, 맹세를 잘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악은 아닙니다. 사실, 맹세가 좋지 않다고 할지라도, 설득해야 할 사람이 믿지 않아서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맹세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온다'는 말씀은, 그 사람의 병약함 때문에 당신이 맹세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을 의미합니다. 맹세의 습관을 없애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사람만이, 가끔 맹세를 해야 할 상황에서 얼마나 힘든지 이해할 것입니다.
5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마태 5,34)라고 하실 때, 왜 하느님의 옥좌인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 하셨으며, ‘자기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늘’, ‘땅’, ‘예루살렘’, 혹은 ‘자기 머리’를 두고 맹세하면 하느님 앞에서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너는 주님께 네 맹세를 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하늘이나 땅, 예루살렘, 자신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 하느님께 의무를 지는 일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이는 명령이 불명확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 의미를 잘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 하늘부터 머리카락 한 올까지 모두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존재하고 그 섭리로 규정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늘과 땅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이나 땅을 두고 맹세한다고 해서 하느님께 대한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하늘이나 땅을 두고 맹세한다고 해서 그 맹세가 하느님 앞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예루살렘이 하느님의 도시임을 의미하며, 예루살렘으로 맹세한 사람도 결국 하느님께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 무엇이 자기 것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요? 하지만 사실, 우리는 머리카락 한 올도 흰색이나 검은색으로 바꿀 수 없어서, 머리조차도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맹세는 하느님께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고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머리로 맹세하려 했던 사람도 결국 하느님께 맹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한 사도 바오로의 말씀도 같은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품고 있는 긍지, 곧 여러분에 대한 나의 긍지를 걸고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1코린15,31).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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