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2월 7일
57. 그 중 첫 번째로 제시된 것은, 받은 작은 악에 대해 법을 거슬러서 더 큰 악으로 보복하는 것이며, 그 다음 주님께서 제자들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제시하신 것은, 즉 받은 악에 대해 어떤 악도 갚지 않는 것이며, 이는 말하자면 중간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받은 만큼 갚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시대에 따라 가장 큰 불화에서 가장 큰 화합쪽으로 거쳐왔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먼저 해를 끼치고 해를 입히려는 의도로 악을 행하는 자는, 비록 해를 입었더라도 악으로 갚지 않는 자와 얼마나 멀리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비록 먼저 해를 주지 않았더라도 일단 해를 입은 뒤에 마음으로나 행동으로 더 큰 악으로 응수하는 사람은, 가장 심각한 사악함에서는 조금 벗어나 '더 큰'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모세의 율법이 규정한 바를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자신이 받은 만큼만 되돌려주는 사람은 이미 어느 정도 자기 몫을 포기한 셈입니다. 실제로 먼저 남을 해친 자는, 아무 잘못 없이 해를 입은 사람이 겪은 만큼의 고통을 받을 자격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초기 단계'의 정의 곧 엄격하기 보다 자비로운 정의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그리스도)에 의하여 온전하게 됩니다. 그분은 언급하지 않으셨으나 짐작할 수 있는 두 가지 중간 단계가 더 있는데, 그분은 그보다는 가장 높은 차원의 자비에 관해 말씀하시는 쪽을 택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 속한 이 위대한 계명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즉, 받은 만큼 다 갚지 않고 그보다 적게 갚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먹 두 대를 맞고 한 대만 때린다거나, 눈을 뽑힌 대가로 상대의 귀를 자르는 식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무것도 되갚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계명에 훨씬 더 가까워진 것이지만, 아직 도달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받은 대로 갚지 않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보시며, 오히려 추가적인 고통까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말한다"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이것도 위대한 계명이지만, 그분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당신에게 가해진 일을 되갚지 않을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가해에도 저항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39) 그분은 '누가 너를 때리거든 맞서 때리지 마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더 맞을 각오를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자비입니다. 이런 자비에 대해서는 자녀나 병든 가족, 혹은 어린아이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이들처럼 자신이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해 본 이들이라면 특히 공감할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종종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참아냅니다. 만약 사랑하는 이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그 연약한 시기나 질병이 끝날 때까지 더 많은 고통을 기꺼이 견뎌냅니다.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께서 이웃을 치유하도록 가르치시는 이들에게, 치유해 주어야 할 이들의 연약함을 선한 마음으로 견뎌내라는 것 외에 무엇을 더 가르치실 수 있었겠습니까? 모든 악한 속성은 영혼의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법이며, 덕으로 완전해진 사람보다 더 무해(無害)한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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