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2월 8일
58. '오른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더 신뢰할 만한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오른뺨'이라고 되어 있으나, 많은 라틴어 사본에서는 '오른[쪽]'이라는 단어를 생략하고 단순히 '뺨'이라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굴은 각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되는 부위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글에서도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누가 여러분을 종으로 부려도, 누가 등쳐 먹어도, 누가 휘어잡아도, 누가 거드름을 피워도, 누가 얼굴을 때려도, 여러분은 참아 줍니다." 그리고 곧이어 덧붙입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2코린 11,20).
이처럼 그는 얼굴을 맞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시켜 줍니다. 그것은 바로 모욕과 멸시를 당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이 말을 한 이유는 신자들이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참아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자신을 다 바칠 정도로 사랑하는 자신(사도)을 더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본래 오른쪽이나 왼쪽이라 말할 수 없지만, 사람의 품위가 하느님 보시기에 귀한 것(오른쪽)과 사람들 보기에 귀한 것(왼쪽)으로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제자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당한다면(오른뺨), 그가 가진 세상적인 명예(왼뺨)에 대해서는 훨씬 더 기꺼이 멸시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일 사도 바오로가 세상에서 가졌던 높은 지위(로마 시민권)에 대해 침묵했다면, 그 자신이 사람들이 자기 안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박해할 때,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뺨을 내어주지 않은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가 "나는 로마 시민이오"라고 말한 것은, 자신 안에서 그토록 고귀하고 구원적인 이름(그리스도인)을 멸시한 자들이, 정작 자신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지위(로마 시민권)마저 무시하려 할 때 그것을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그가 로마 시민에게는 채울 수 없는 쇠사슬에 묶였을 때, 그 인내심이 조금이라도 흔들렸겠습니까? 혹은 자신이 입은 불의에 대해 누군가를 고발하려 했겠습니까? 설령 어떤 이들이 로마 시민권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가해질 형벌을 면해주었다 하더라도, 사도 바오로는 기꺼이 매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내를 통해 그들의 큰 사악함을 바로잡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 안에서 오른쪽의 권리보다 왼쪽의 권리를 더 존중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가 이 모든 일을 얼마나 위대한 정신으로 행했는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큰 선의와 관용으로 대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대사제의 명령으로 뺨을 맞았을 때, 사도가 대사제를 모욕하는 듯 보이자 "회칠한 벽 같은 자, 하느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오!"(사도 23,3)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욕설로 들리겠지만, 깨닫는 자에게는 예언입니다.
'회칠한 벽'은 곧 위선을 뜻합니다. 즉, 사제라는 품위를 겉으로 내세워 깨끗한 덮개처럼 사용하면서, 그 아래에 타락한 부패를 숨기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겸손에 관해서라면 사도는 이를 놀랍도록 지킬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대사제를 욕하는 것이오?”라고 묻자, 그는 “형제 여러분, 저분이 대사제인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성경에도 ‘네 백성의 수장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사도 23, 3-4)
이는 그가 분노에 휩싸여 말한 것처럼 보였던 앞선 발언조차 얼마나 평온한 마음으로 내뱉은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진정으로 화가 나고 마음이 어지러운 상태라면 곧바로 그토록 온유하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대답 속에는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순수한 진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나는 저분이 대사제인 줄은 몰랐습니다"라는 말은 마치 "나에게는 내가 그 이름 때문에 이 고통을 견디고 있는 또 다른 대사제(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분은 결코 모독해서는 안 될 분인데 너희는 내 안에서 오직 그분의 이름만을 미워함으로써 그분을 모독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들을 위선적으로 자랑해서는 안 되며, "제 마음 든든합니다, 하느님. 제 마음 든든합니다"(시편 57,8)라는 예언적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겉으로는 다른 뺨을 내어줄 줄 알지만, 자신을 때린 자를 사랑할 줄은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가르치신 계명을 몸소 가장 먼저 실천하셨지만, 당신의 뺨을 때린 대사제의 하인에게 다른 뺨을 내미는 대신 "내가 잘못 이야기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 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요한 18,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 때문에 주님께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셨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만민의 구원을 위해 다른 쪽 뺨을 맞는 것뿐만 아니라, 당신의 온몸을 십자가에 내어줄 준비까지도 이미 마음속으로 마치셨기 때문입니다.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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