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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Vangelo di domenica 2019.02.17 Vangelo di domenica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3월 31일

「주님의 산상수훈에 대하여」(De sermone Domini in monte) 제2권 39-42:

39. 우리는 주님께서 기도를 명령하신 이 모든 가르침 중에서, 특별히 죄의 용서와 관련하여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하신 부분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를 비참함에서 건져낼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구절에서도 우리는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말합니다. 만약 이 계약 속에서 우리가 거짓을 말한다면, 이 기도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

40. 이어서 단식에 대한 계명이 나오는데, 이는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마음의 정화와 관련됩니다. 단식을 실천할 때에도 과시하는 마음이나 사람의 칭찬을 바라는 욕망이 스며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은 인간의 마음을 두 갈래로 나누어 버려, 하느님을 뵙기 위한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을 잃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16-18).

이 계명들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지향은 반드시 내적인 기쁨을 향해야 합니다. 바깥에서 보상을 찾게 되면, 우리는 이 세상에 동화되어 버리고, 더 깊고 더 확실한 복됨의 약속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복됨은 내면에 자리할수록 더욱 굳건한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

41.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과시(iattanza)'가 단지 세속적인 화려함 속에만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저분하고 남루한 옷차림 속에도 숨어들 수 있다는 점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과시는 하느님을 섬긴다는 명분을 내세우기에 더욱 위험합니다. 신체나 의복을 지나치게 가꾸어 돋보이려 하는 사람은 그 화려함 자체가 이미 이 세상을 따르는 자임을 드러내므로 거룩한 척하며 사람을 속이지 못합니다. 반대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공언하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일부러 지저분하고 불결한 옷을 입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형편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에 의한 것일 경우 그가 허영을 경멸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야심 때문인지는 그의 다른 행동들을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양의 가죽 아래 숨어 있는 이리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16).

여러 가지 유혹 때문에, 그들이 위선으로 얻었거나 얻으려 했던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그때 그들이 양의 탈을 쓴 늑대인지, 아니면 참으로 양인지는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화려한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속이는 사람들은 오히려 소박하고 검소한 옷차림을 이용하여 순진한 이들을 속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늑대가 때때로 양의 가죽을 입는다고 해서, 양이 자기 가죽을 벗어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42. 다음 말씀은 종종 그 의미를 묻게 되는 구절입니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마태 6,17-18).

누구도 단식할 때 실제로 머리에 향유를 바르라고 명령한다고 이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얼굴을 씻는 것은 일상적인 습관이지만,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것을 문자 그대로 모두가 부적절하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이 계명이 ‘내적인 인간’에 대해 말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는 것은 ‘기쁨’을 가리키고, 얼굴을 씻으라는 것은 ‘정결함’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정신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머리’는 영혼 안에서 가장 높은 부분, 곧 인간의 다른 모든 능력을 다스리고 이끄는 부분을 가리킵니다.

외적인 기쁨, 곧 사람들의 칭찬을 육적으로 즐기려는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육체는 복종해야 할 것이지, 인간 전체의 머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아무도 자기 몸을 미워하지 않습니다”(에페소 5,29)라고 말하면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아내의 머리는 남편”(1코린토 11,3)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에 따라 단식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기 머리를 향기롭게 유지하고자 한다면 내적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단식을 통해 세상의 즐거움에서 벗어나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자기 얼굴을 씻게 될 것입니다. 곧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하느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더러움의 장막이 더 이상 그를 가로막지 못하고, 그는 이미 순수하고 단순해졌기 때문에 굳건하고 확신에 차게 될 것입니다.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이사야 1,16)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눈을 거슬리게 하는 더러움에서 우리의 얼굴을 씻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2코린토 3,18).

번역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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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월 2026,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