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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아 두스 산투스(우)와 그녀의 사촌 프란치스코 마르투와 히야친타 마르투 남매 루치아 두스 산투스(우)와 그녀의 사촌 프란치스코 마르투와 히야친타 마르투 남매 

파티마 성모 발현 목격자 루치아 수녀, 가경자 선포

프란치스코 교황이 파티마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목동 가운데 한 명인 루치아 수녀를 비롯해 다섯 명의 영웅적 덕행을 인정하는 교령을 승인했다. 스페인 내전으로 목숨을 잃은 20명의 순교 사실이 인정됐다.

Christopher Wells 

사촌 프란치스코 마르투와 히야친타 마르투와 함께 파티마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발현을 여러 차례 목격한 가르멜회 소속 루치아 두스 산투스 수녀가 교회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됐다. 

루치아 수녀의 영웅적 덕행을 인정하는 교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명을 받아 6월 22일 반포됐다. 

1916년 루치아와 그녀의 사촌 남매는 포르투갈 파티마 지역에서 천사의 방문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이듬해 5월 13일부터 이들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발현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6개월 후 수만 명이 목격한 “태양의 기적”으로 발현은 절정에 달했다. 

수년 뒤 스페인 독감으로 사촌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에도 루치아 수녀는 성모님이 맡기신 메시지를 유일하게 간직하던 인물이었다. 루치아 수녀는 레이리아교구장 주제 아우베스 꼬헤이아 다 시우바 주교의 지시에 따라 1935년부터 1941년까지 이 메시지를 네 개의 문서 형태로 기록했다. 

1944년에 작성된 기록에는 이른바 “셋째 비밀”이 담겨 있었다. 셋째 비밀은 로마로 보내져 1960년 처음으로 공개됐다. 파티마 성모님을 특별한 신심으로 공경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0년 셋째 비밀의 공개를 허락했다. 

비범함과 평범함

루치아 수녀는 파티마에서 받은 메시지에 평생을 바쳤다. 처음에는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도로테아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훗날 코임브라 소재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 2005년 2월 13일 거기서 선종했다. 

교령에 따르면 루치아 수녀의 삶과 성모 발현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그녀가 겪은 고통의 대부분이 성모 발현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항상 숨겨지고, 보호받고, 지켜졌다. 그녀가 목격한 사건의 특별함과 가르멜회 같은 수도원 생활의 평범한 일상을 함께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녀에게서 볼 수 있다.”

파티마 성모 발현은 여러 교황들에게 승인을 받아 왔다. 교회는 매년 5월 13일을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지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을 맞아 파티마를 방문해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목동 가운데 2명, 곧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남매를 성인품에 올렸다. 이번에 나온 교령은 루치아 수녀의 성인품 여정에 박차를 가한다. 

성모 성지에서 행렬 중인 파티마 성모상
성모 성지에서 행렬 중인 파티마 성모상

스페인 내전의 순교자들

1936년 스페인 내전 중 “신앙에 대한 증오” 때문에 죽임을 당한 20명의 순교 사실이 인정됐다.  

1880년 세비야에서 태어나 1911년 콘스탄티나의 본당 주임으로 발령받은 마누엘 곤살레스-세르나 로드리게스 신부는 1936년 7월 19일 밤 공화당 민병대에 체포돼 나흘 후 본당 제의실에서 죽임을 당했다. 

스페인 내전의 시작을 알린 그해 여름, 세비야 안팎에서 수많은 사제들이 재판 없이 목숨을 잃었다. 순교자 중에는 마리아노 카바예로 루비오 신부도 있었다. 그가 체포되기 전 그의 부임지인 우엘바성당이 불에 탔다. 아울러 19세에 아버지와 함께 체포됐다가 목숨을 잃은 신학생 엔리케 팔라시오스 몬라바를 비롯해 변호사, 약사, 본당 사목평의회 위원 그리고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와 함께 수도원 근처에서 살았던 가난한 글라라 수녀회의 관리인 등도 포함돼 있다. 

스페인 박해로 순교한 2000여 명은 이미 성인품에 올랐으며, 약 2000여 명의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 절차가 추가로 진행되고 있다. 

다른 네 명의 새 가경자

루치아 수녀와 함께 다른 네 명의 ‘하느님의 종’들도 ‘가경자’로 선포된다. 

인종차별 때문에 고국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메리 랭 수녀는 1829년 볼티모어에서 오블라티 수녀회를 설립했다. 이 수녀회는 학교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브라질 포르탈레자대교구장을 지내고 1974년 선종한 살레시오회 안토니오 드 알메이다 루스토사 대주교는 “첫 번째 복음화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존엄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필가이자 과학자, 예술가이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안토니오 파가니 신부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프란치스칸 신학자로 활약했다. ‘거룩한 십자가의 형제회’(1578년)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누추한 딸들 수녀회’(1579년)의 설립자인 그는 가톨릭 평신도를 위해 헌신했다.

끝으로 카타니아 출신의 빈첸시오회 소속 안나 칸탈루포 수녀는 시칠리아 도시를 지나는 제2차 세계대전 군인들을 위한 영적 돌봄을 조직하며 아프고 가난한 이들, 특히 전쟁 고아를 돌보는 데 헌신했다. 

교황청 시성부 누리집은 이번에 가경자로 선포된 ‘하느님의 종’들의 약력 링크를 제공한다(이탈리아어). 

 

번역 고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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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6월 2023,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