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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순방을 떠나는 교황(자료사진). 카자흐스탄 사도 순방은 오는 9월 13일부터 15일까지다. 사도 순방을 떠나는 교황(자료사진). 카자흐스탄 사도 순방은 오는 9월 13일부터 15일까지다.  (AFP or licensors)

카자흐스탄, 페타 대주교 “교황님의 사도 순방은 큰 축복”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도 순방을 일주일 남짓 앞두고 카자흐스탄 교회가 희망에 부풀어 교황의 방문을 고대한다. 아스타나-누르술탄대교구장 페타 대주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엄청난 비극이자 온 인류에 상처를 남겼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희는 교황님의 방문이 그토록 열망했던 평화를 이루는 데 크게 이바지하리라 믿습니다.”

Deborah Castellano Lubov / 번역 이창욱

오는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7차 세계·전통종교지도자 대회’가 개최되는 카자흐스탄을 방문한다. 3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주최로 열린다. 이번 사도 순방은 “평화와 일치의 전령들”이라는 모토에서 드러나듯 평화와 일치를 표방한다. 교황은 방문 동안 주로 카자흐스탄의 북부에 위치한 현대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수도 누르술탄에 머물며 정부 관계자들과 시민단체를 만난다. 또한 다양한 종파의 대표들과 함께 기도하며 대화하고, 지역 교회 관계자들을 만나고,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미사를 거행한다. 

드넓은 평원국에 자리한 작은 교회

카자흐스탄 교회의 기원은 13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랑스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은 현재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도착했으며 몽골까지 이르렀다. 중앙아시아 전역의 선교를 담당한 이들은 프란치스코회 선교사들이었다. 14세기에 이르러 이 지역에서 첫 박해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후 19세기 중엽까지 교회와 관련해 더 이상의 정보가 남아있지 않다. 가톨릭 신자들 중 일부는 러시아 군인이 되거나 추방되거나 혹은 망명했으며 다른 일부는 전쟁 포로, 난민으로 전락했다.

옛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다양한 민족들은 1991년 독립을 선언하며 카자흐스탄의 탄생을 알렸고, 이는 작은 규모의 가톨릭 교회에게 전환점이 됐다. 1992년 구소련 국가들과 교황청의 외교 관계가 수립됐으며, 1998년에는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육·사회보건 활동을 위한 자유, 사회홍보수단에 접근할 자유, 의료시설과 교도소에서 신자들에게 영적 지원을 보장하는 양국 간의 협정이 체결됐다. 200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카자흐스탄을 방문할 당시 ‘종교와 문화 간의 조화’를 중점적으로 강조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회칙 「Fratelli tutti」의 정신 안에서 다시 한번 같은 주제를 강조할 것이다.

세계 화해를 증진하기 위한 교황의 방문

카자흐스탄의 가톨릭 신자는 인구 대비 0.01퍼센트에 불과하다. 다만 인구의 약 4분의 1이 그리스도교인이고 대부분은 동방 정교회 신자들이다. 카자흐스탄 교회는 4개 교구(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아스타나-누르술탄대교구,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알마티교구, 카라간다교구, 아티라우 직할 서리구)와 총 70개의 본당이 있으며, 성직자는 100여 명이다. 아스타나-누르술탄대교구장 토마츠 베르나르드 페타(Tomasz Bernard Peta) 대주교는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카자흐스탄 교회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하 페타 대주교와의 일문일답:

교황님의 사도 순방이 카자흐스탄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교황님의 방문은 항상 역사적 사건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적은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 방문이 우리 가톨릭 신자와 카자흐스탄의 온 국민에게 큰 축복이라고 확신합니다. 극적인 국제정세를 감안할 때 이번 방문은 그 자체로 세계적 규모의 평화와 화해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저희는 교황님이 누르술탄 주교좌성당에서 ‘대초원의 어머니’라는 제목의 세 폭 제단화 이콘을 축성하시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성화는 오조르노예(Ozyornoye)에 위치한 평화의 모후 국립성지에 안치될 예정입니다. 그곳에서 교황님의 방문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교황님의 ‘제7차 세계·전통종교지도자 대회’ 참석은 얼마나 중요한가요?

“그 대회는 신학적 토론을 위한 플랫폼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교황님 참석의 중요성은 평화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가리키는 표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평화를 위한 신자들의 열렬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교황님의 대회 참석은 이 행사의 수준을 드높이고 온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돌보는 교회의 관심을 드러냅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교황님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카자흐스탄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 교황님은 교회의 수장이시고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이십니다. 저희는 기쁨과 희망으로 교황님을 기다립니다. 카자흐스탄 당국이 교황님을 권위를 대표하는 분으로 생각한다는 게 주목할 만합니다. 정부가 교황님의 방문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측면이 잘 드러납니다.”

대주교님이 카자흐스탄에 오셨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지난 1990년 카자흐스탄에 왔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체제 시절이었죠. 당시에는 교회 조직이 틀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5개 공화국 영토에는 소비에트 연방 시민으로 약 15명의 사제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도시와 마을에 신자 공동체가 있었고요. 공산주의 시대의 공동체에서는 특히 묵주기도를 바치며 교회에 대한 소속감과 믿음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 1991년 카자흐스탄이 독립한 후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누리게 되자 결실을 맺었습니다. 본당들이 빠르게 설립됐고 성당과 경당도 지어졌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가톨릭 신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저희는 카자흐스탄에서 종교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자흐스탄에서 가톨릭 신자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가톨릭 신자는 1퍼센트도 안 됩니다. 다민족 국가인 카자흐스탄의 전체 인구는 약 1900만 명이며, 130여 개의 민족이 함께 살아갑니다. 그중 카자흐인이 70퍼센트에 이릅니다. 또한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종교만 18개나 됩니다. 따라서 카자흐스탄에서 가톨릭 신자로 산다는 것은 성숙한 선택을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독립 후 몇 년 간 수백만의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역사가 깃든 조국으로 향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수천 명의 가톨릭 신자들도 있습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가톨릭 공동체는 더욱 국제적 모양새를 띠게 됐습니다. 카자흐스탄의 가톨릭 신자는 카자흐인을 대표하는 이들을 포함해 10여 개의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처럼 저희를 더 이상 ‘독일’ 교회 혹은 ‘폴란드’ 교회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교황님의 평화 호소를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우크라이나 전쟁은 엄청난 비극입니다. 온 인류의 몸에 난 상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교황님의 방문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과 그토록 열망했던 평화를 이루는 데 크게 이바지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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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9월 2022,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