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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천사로 변장해서 옵니다. 항상 우리 마음을 살펴봅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2년 12월 14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을 통해 ‘깨어 있음’의 측면을 설명하면서 식별에 대한 교리 교육을 진행했다. 교황은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내면을 끊임없이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악마는 우리 영혼을 차지하기 위해 공손하게 우리 영혼의 문을 두드릴 줄 알기 때문이다.

번역 김호열 신부

식별에 대한 교리 교육  12. ‘깨어 있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제 식별에 대한 교리 교육 여정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의 사례(9월 7일)를 시작으로 식별에 대한 교리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식별의 요소들, 곧 주님을 친근하게 느끼기 위한 ‘기도(9월 28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에 관한 ‘자기 인식(10월 5일)’, ‘열망(10월 12일)’, ‘인생이라는 책(10월 19일)’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영적 고독(10월 26일)’, ‘영적 위안(11월 23일)’, ‘좋은 선택의 확증(12월 7일)’을 다뤘습니다. 

이 시점에서, 최선의 것을 식별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행한 모든 작업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식별의 본질적인 태도를 부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깨어 있음(vigilanza)’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식별을 하고, 영적 위안과 영적 고독을 체험하고, 우리가 내린 선택에 확증을 가졌습니다. (…)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면, 이제는 ‘깨어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곧, ‘깨어 있는’ 태도입니다. ‘깨어 있음’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조금 전에 들은 복음 구절(마태 12,43-45 참조)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이 존재합니다. ‘불청객’, 다시 말해 악마가 모든 것을 망쳐버려 우리를 원점으로 되돌아가게 만들 수 있으며 심지어 처음보다 더 나쁜 상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이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부분을 강조하고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식별 과정이 성공에 도달하는 데 있어 필요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좋은 제자는 깨어 있고, 잠들지 않으며, 일이 잘 풀릴 때 지나치게 자만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설교를 통해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 12,35-37)

우리 마음을 지키고, 우리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날에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입니다. 이는 또한 우리 삶의 방식을 유지하려는 일상적인 태도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이로써 이따금씩 책임감 있는 식별 후에 취하는 우리의 좋은 선택이 끈기 있고 일관된 방식으로 이어져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깨어 있음’이 부족하면, 말씀드린 것처럼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이 매우 큽니다. 이는 심리학적인 면에서 위험하다는 게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악한 영의 올가미입니다. 악마는 우리가 스스로를 지나치게 과신하는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바로 위험입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어. 내가 이겼어. 이젠 괜찮아. (…)”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이 악한 영이 기다리는 순간입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모든 것이 “호황을 누릴 때”, 속담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바람 따라 돛을 달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가 조금 전에 들었던 복음서에 나오는 짧은 비유는 더러운 영이 그가 나왔던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마태 12,44)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은 어디에 있나요? 집주인이 없습니다. 그 집을 깨어 지키는 사람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집주인이 없습니다. 외출 중이거나,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있거나, 아니면 집에 있지만 잠들어 있기 때문에 마치 집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깨어 있지 않고 방심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자신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겸손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가정과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소홀히 하거나 마냥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비유가 말했듯이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쁜 영이 이를 틈타 그 집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복음서는 그가 혼자 되돌아오지 않고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45절)과 함께 되돌아온다고 말합니다. 곧, 악행을 저지르는 무리, 나쁜 짓을 저지르는 무리가 함께 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집주인은 왜 눈치를 채지 못할까? 주인이 잘 식별하고 그들을 쫓아내면 되지 않는가? 집이 너무 예쁘고 멋있고, 너무 깔끔하고 깨끗해서 친구들과 이웃들에게서 칭찬을 받지 않았던가? 네, 아마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집주인은 집,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여 신랑이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정리정돈한 것을 어지럽힐까 우려해서 더 이상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집주인은 가난한 사람, 집 없는 사람, 성가시게 하는 사람 등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쁜 자존심, 이를테면 자신이 정의롭고 선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만심이 중심에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네, 과거에 저는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돌이켰고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집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지나치게 많이 신뢰할 때, 악마는 우리 마음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는 원정대를 조직하고 그 집을 차지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비유 말미에 말씀하신 대로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집니다”(마태 12,45 참조). 

그런데 집주인은 눈치채지 못하나요? 네, 눈치채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의 바른 악마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슬며시 들어와 문을 두드리고 공손하게 행동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오세요, 오세요, 들어오세요. (…)”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배합니다. 이 작은 악마들을 조심하십시오. 악마는 단정한 신사처럼 행세하며 예의 바르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집에 들어오고 집에서 나갈 때는 그 본래의 모습으로 나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공손한 악마의 속임수에서 집을 보호해야 합니다. 영적 세속성은 항상 이런 식으로 진행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일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입니다. ‘깨어 있음’이 부족하면 우리는 여러 번 패배합니다. 여러 번 전투에서 패배합니다. 주님께서는 너무나 자주 그토록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지만, 결국 우리는 주님의 은총 안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우리에게 ‘깨어 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손하게 인사하며 집으로 따라 들어오는 누군가에게 속아넘어갑니다. 악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는 자신의 인생사를 되돌아봄으로써 이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잘 식별하고 좋은 선택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계를 늦추지 말고 깨어 있으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은총을 지켜야 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무질서를 볼 때 그것이 마귀이며, 유혹이라는 것을 즉시 깨달을 수 있습니다. (…)” 그럼요. 하지만 이번에는 악마가 천사로 변장해서 옵니다. 악마는 천사로 변장할 수 있습니다. 예의 바른 말로 들어오고, 여러분을 설득하고, 결국에는 여러분을 처음보다 더 나빠지게 합니다. (…)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지켜보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저 자신에게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하고 묻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모든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것입니다. 한두 가지는 말할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음을 잘 지켜보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깨어 있음’은 지혜의 표징, 특히 겸손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 삶의 주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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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2월 202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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